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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등인의 별/읽고 ▤

식물의 잃어버린 언어 / 스티븐 헤로드 뷰너

by 마루몽. 2011. 11. 7.

 

 
자연을 지성과 영혼이 있는 생명체로 인식했던 옛날에는 자연과의 자연스러운 교감이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미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 Edward O. Wilson이 말한 생명사랑 biophilia -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향한 선천적인 즉, 유전적으로 이미 암호화되어 있는 정서적 친근감 - 은 바로 이런 태도의 한 모습이다. 그러나 생각이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고, 지구는 죽어 있는 존재이며 다른 생명체들은 본질적으로 가치가 떨어지는 존재라고 교육받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은 야생과의 정규적인 접촉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그 결과 생명에 대한 사랑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생명을 사랑하고 생명과 교감하게 해주는 유전적 암호가 발현되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식물의 잃어버린 언어 / 스티븐 헤로드 뷰너
The Lost Language of Plants / Stephen Harrod Buhner
 


이제 우리가 마시는 물 속에서도 항생제며 고혈압치료제 항히스타민제 진통제 등의 성분이 검출되고 있고, 박멸되었어야 마땅한 박테리아들이 저항정보를 공유하고, 아직 개발도 되지 않은 그러나 예측 가능한 화학식의 항생제에까지 내성을 갖춰 나타나는 것을 사람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인간의 조제약에 대해서는 그토록 학습능력이 뛰어난 박테리아도 식물의 항박테리아성분에 대해서는 내성을 갖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사람들이 치료나 예방을 위해 '명백한' 화학식의 조제약을 만들어내는 대신 식물이 주는 '변화무쌍한' 화학식을 이해하려 했다면 세상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어렸을 때 학교에서 양파표피를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그리는'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크레파스로 산과 들, 운동장의 아이들, 소들을 그리던 손과 양파표피의 세포를 그리기 위해 연필을 잡은 손이 너무나도 다른 존재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자연을 이해하려했던 것이 얼마나 잘못된 시작이었는지....

이 책은 내 안에서 길을 잃은 식물의 리듬을 되살리고, 식물들의 언어가 깃든 어떤 류의 공식을 내부의 '구멍'에 끼워맞춰 준다. 그래서 식물과 내가 강력한 피드백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영혼의 영역이라 믿어왔던 '교류'가 지금 당장 코와 폐와 촉감을 통해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아 심호흡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발바닥을 간지럽히던 그늘의 푸른 이끼
두 손바닥 안에서도 목을 넘어가면서도 졸졸거리는 소리를 내던 계곡 물
몸의 모든 근육을 사용하여 오르내리는 법을 가르쳐준 낮은 산
그 모든 것들이 내부로 걸어들어와 어린 시절의 나, 지혜로운 아이였던 나,를 깨우고 있다.
(자연을 이해하는 이들은 대부분 아이들이다, 그것도 지혜로운 아이)

어떻게 화학성분을 가리키는 단어들로 가득 찬 책이 이토록 서정적일 수 있는지.

 

 

바다의 노래는 누구의 귀에나 들리지만, 이 산 속에는 아무나 들을 수 없는 음악이 있다. 이 음악을 몇 곡조라도 듣고 싶다면, 먼저 이곳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야 하고, 언덕과 강이 건네는 말을 알아들어야 한다. 그리고 모닥불도 사그라지고 플레이아데스성단도 벼랑 가장자리의 바위 너머로 사라져버린 고요한 밤에는, 가만히 앉아 늑대들의 울음 소리를 들으며 그동안 보고 이해하려 했던 모든 것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러면 웅장하게 고동치는 하모니가, 천 개의 언덕 위에 새겨져 있는 그 악보가, 동식물들의 삶과 죽음이 만들어내는 그 선율이, 몇 초에서 수 세기의 간격으로 이어지는 그 리듬이 들릴 것이다.
 
-알도 레오폴드 <모래 군의 열두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