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점등인의 별/읽고 ▤

아인슈타인의 베일 - 안톤 차일링거

by 마루몽. 2011. 11. 7.

 

 

 

 

광자의 파동-입자 이중성에 대한 논의가 뜨거울 때, 프랑스의 귀족 출신 드 브로이 Louis de Broglie는 빛이 파동의 성질을 가질 뿐 아니라 질량이 있는 모든 입자들이 파동성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1924년 파리에서 발표한 그 논문은 새로운 학문 세계를 향한 과감한 첫걸음이었다. 아인슈타인은 그것이 중요한 연구라는 것을 즉시 간파하고, 이제는 유명해진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그는 거대한 베일의 한 자락을 들췄다.”

브로이의 주장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생각하면 복잡해진다. 광속은 초속 299,792,458미터로, 절대적인 최고 속도이다. 정확히 말해서 질량 있는 물체는 절대로 광속에 도달하지 못한다. 실제로 한 물체를 완벽한 광속에 도달하게 하려면 무한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만약 한 물체가 광속에 도달한다면, 질량은 무한대가 될 것이다. 이는 질량 있는 물체를 광속으로 가속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드 브로이가 보이고자 했던 것은 질량 있는 입자들도 광자와 똑같이 파동성을 가진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전자를 이용한 간섭 실험이 곧 실행되었고, 이어서 중성자를 비롯한 많은 거대한 입자들을 이용한 실험들도 이루어졌다. 그리고 실험들은 기대한 결과들을 산출했다. 질량 있는 입자를 가지고도 빛을 이용한 것과 같은 이중 슬릿 간섭 실험에 성공하기 시작한 것이다. 1957년에 튀빙겐의 왼손 클라우스 얀손Claus Jonsson)은 전자를 이용한 이중 슬릿 간섭 실험에 성공했다. 그리고 차일링거의 연구진은 1988년에 전자보다 2,000배나 무거운 중성자를 이용한 간섭 실험에 성공했고 카르날과 믈리네크는 1990년에 원자 광선으로 간섭 실험을 실행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흥미로운 질문은 이것이다. 

이중 슬릿 간섭현상을 관찰할 수 있는 대상의 최대 크기는 얼마일까? 

우리는 왜 일상에서 그런 현상을 관찰하지 못하는가?

거시적인 세계에서의 양자 중첩은 분명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당구공은 한 장소에만 있고, 고양이는 살아 있든지 아니면 죽었다. 만일 우리가 충분히 큰 계에서 항상 결흩어짐(양자 중첩이 사라지는 현상)이 일어나게 만드는 메커니즘을 안다면, 거시적인 중첩을 배제할 수 있을 것이다.

양자역학적 중첩에서는 중첩되는 상태들의 결맞음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양자역학적 계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결맞음을 잃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 일은 주변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일어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이중 슬릿 실험에서 입자가 어디에 있는지 보려고 계에 빛을 비추면, 계와 주변의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조명이 계를 교란한 것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의 경우에는 수많은 다른 결흩어짐 메커니즘도 있다. 주변의 공기 분자들과 상호작용을 하는 고양이의 호흡, 열선을 방출하는 체온만으로도 결흩어짐은 충분히 설명된다.

여기에서 작가는, 만약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갖춰진다면, 즉, 거시적인 계가 교란을 받지 않아 결맞음을 잃지 않게 하면서 실험을 할 수 있다면 커다란 물체에 대해서도 양자 중첩을 목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한다. 축구공 분자(풀러렌 Fullerene)의 간섭 실험에서 분자들은 온도가 섭씨 약 650도였으므로 열선을 방출했다. 다시 말해서 그 분자들은 주변으로부터 고립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간섭이 일어났고 결맞음이 실제로 관찰되었다.

주변과의 상호작용이 풀러렌을 교란하지만, 그 교란이 너무 작아서 결흩어짐을 일으키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언젠가 실험이 발전되면 결맞음과 양자역학적 중첩이 커다란 대상에 대해서도 입증되고 따라서 양자 중첩이 미시 세계에 국한된다는 말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이 책의 3/4 가량은 양자역학의 역사와, 양자역학을 지지하는 학자들의 (검증되지 않은 이론을 포함한) 이론들, 지지하지 않는 아인슈타인-포돌스키-로젠의 패러독스(EPR Paradox : 이 부분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도 자세히 나온다), 그리고 (사고실험을 포함한) 실험을 설명하는데 할애된다.

나머지 뒷편의 1/4 정도는 양자역학을 철학적으로 다루려는 시도를 한다. 그래서 확고한 실험물리학자의 목소리가 갑자기 철학자 같은 뉘앙스로 바뀌는데, 잘 알아들을 수 없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차일링거는 이렇게 말한다. 

 만일 당신이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곳에 따라 불확실한 영역을 여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나는 저자인 나 자신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는 고백으로 당신을 위로하겠다. 우리는 많은 것이 아직 불분명하고 몇 가지 매우 중요한 질문이 아직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영역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실재와 정보를 포괄하는 개념의 본성에 대한 질문, 즉, 앎의 본질에 대한 질문도 그런 질문들 중 하나이다.

 


드 브로이의 학위논문을 심사할 때 아인슈타인은, 그가 거대한 베일의 한 자락을 들췄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것은 아마도 실재하는 실재를 가리는 거대한 베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실재하는 실재’가 최소한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는 결코 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아인슈타인의 베일 뒤에 숨어 있는 것은 그저 스무고개 놀이의 질문들에 대한 ‘예-아니오 대답’ 이상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0또는 1인 것이다.) 베일 뒤에는 우리 모두가 각자 개별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던지고 부분적으로 대합하는 스무 개, 혹은 천 개, 혹은 무수히 않은 질문들에 대한 ‘예-아니오 대답’이 있을 뿐이다.


 

차례 


서문

 

 

Ⅰ. 모든 것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1. 이상적인 빛
2. 친숙한 것들과의 결별
3. 실험실에서 벌어지는 일, 혹은 '축구공은 어디에 있을까?'
4. 파동……
5. ……혹은 입자? 우연의 발견
 


Ⅱ. 새로운 실험, 새로운 불확실성, 새로운 질문

1. 입자에서 쌍둥이로
2. 얽힘과 개연성
3. 벨의 발견
4. 폭군과 신탁
5. 양자 세계의 한계와 프랑스 왕자
6.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
 


Ⅲ. 쓸모없는 것이 주는 이득

1. 줄리엣에게 보내는 로미오의 비밀 편지
2. 앨리스와 봅
3. 완전히 새로운 세대
 


Ⅳ. 아인슈타인의 베일

 

1. 기호와 실재
2. 양자물리학의 해석 모형들
3. 코펜하겐 해석
4. 거짓된 진실과 심오한 진실
5. 아이슈타인의 오류
6. 확률 파동
7. 고감도 폭탄 제거
8. 과거에서 온 빛

 
Ⅴ. 정보로서의 세계

1. 정말 그렇게 복잡해야 할까?
2. 스무고개
3. 정보와 실재
4. 베일 너머 - 가능성의 세계

 
역자후기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