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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등인의 별/읽고 ▤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조나 레러

by 마루몽. 2014. 4. 4.

PROUST was a NEUROSCIENTIST 
조나 레러JONAH LEHRER / 최애리. 안시열 옮김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는 영양 많고 맛좋은 요리 같다. 특히 예술과 과학 분야 둘 다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와인까지 준비된 저녁 만찬일지도... 8개의 독립된 이야기들, 그러니까 시인과 소설가, 요리사, 화가, 음악가들의 작품세계를 신경과학적으로 분석해주니 메뉴도 풍성하다. 독립된 챕터로 이루어진 글은 깊이가 부족해 좋아하지 않는데 이 책은 정말 맛있다^-^

더구나 조나 레러 Jonah LEHRER가 이 책을 쓸 당시 스물여섯이었다! 


책의 내용을 챕터 별로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실은 간략하게 요약할 수가 없다. 한 권의 책에 여러 개의 이야기가 등장하면서 각각의 이야기는 또다시 다른 이야기들 속으로 파고든다. 심층적이라기보다는 분화적이다. 게다가 이 책 자체가 요약본이라 할 수 있기에 기록의 차원에서 간략하게 정리할 수 있을 뿐이다.)


1.

몸이 곧 영혼이며 마음이라고 노래한 시인 월트 휘트먼이 8명의 예술가들 중 제일 처음에 등장한다.

누군가 영혼을 보여 달라 했던가?
보아라, 네 자신의 모양과 생김새를......
보라, 몸은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의미이다
주된 관심을, 영혼을 담고 있으며 영혼이다

휘트먼이라는 이름은 낯설었지만, 

남북전쟁 동안 감각 유령(sensory ghost, 환각지) 이야기를 문서화한 신경과의사 사일러스 위어 미첼과 휘트먼은 좋은 친구 사이였고 전쟁 당시에 직접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했다. (휘트먼은 1862년 겨울, 남북전쟁에 종군 중이던 동생의 부상을 계기로 이후 1년 이상 워싱턴의 병원에서 부상병을 간호했다. -책 중 작가소개) 그리고 그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1865년에 시집 [북소리]를 출간했다. 

또 이 장에서는 다마시오의 카드 게임 실험에 대해서도 언급된다(이성이 지각하기 전에 손이 먼저 어떤 카드를 뽑아야 할지 ‘알고’ 있음을 증명한 이 실험은 신경과학 책에 자주 등장한다). 

 

 

(※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언터처블에서 

전신마비 된 필립의 '귀 이야기'와 '유령통증'도 신경학적 근거가 있다.)

 


2.

두 번째는 영국의 여류 소설가 조지 엘리엇(본명 : 메리 앤 에번스 Mary Ann Evans 1819~1880). 

엘리엇 역시 버지니아 울프를 통해서만 알고 있는 만큼, 내게는 낯설지만 이 장을 읽으면서 그녀의 소설을 하나 정도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란 대리석에 새긴 것처럼 요지부동이 아니라 살아서 변화하는 무엇”이고 “우리는 과정이며 전개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19세기 말의 여류 소설가라니. 

뭐랄까, 엘리엇의 변화와 신경발생학적 유동성을 연결 짓는다든지 인간 유전체의, 해석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굳이 엘리엇의 문학에 접목시킨 것은 (다른 장에 비해) 조금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사실 이 장은 엘리엇보다도 스티븐 킹과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작가는 ‘지난 세대의’ ‘예술가’를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조지 엘리엇

 


3.

세 번째 장은 프랑스의 전설적인 요리사 에스코피에 이야기이다. 

코스 요리의 이름들과 분위기를 매우 중요시 여겼던 에스코피에 장에서 작가는, 이미 짐작했겠지만, 감각의 주관성, 경험에 바탕을 둔 후각과 미각의 가소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의 감각지각이 상황의 영향을 얼마나 강력하게 받는지에 대해 에스코피에는 이렇게 말했다. 

“말고기라 할지라도 즐길만한 환경만 된다면 맛있을 수 있다.” (그러니까 말고기는 맛이 없다는 얘기네?) 그리고 그는 천재 요리사답게 당시에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후각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는 방법으로 요리의 맛을 끌어올렸다. 맛은 풍미로부터 시작된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이케다 키쿠나에의 MSG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그 백색의 결정체는 감각지각의 유연성과 정면으로 배치가 되지 않는가.)

  

4.

오, 그리고 네 번째가 바로 마르셀 프루스트의 기억의 방법이다. 신경심리학자들이 기억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인용하는 것이 프루스트여서, 그의 마들렌이여서 좀 식상할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 장은 정말 환상적이다. 코스 요리로 치면 이제 메인접시가 나온 것이다.

모든 기억은 두 개의 뉴런 사이의 연관이 변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이고 1906년 노벨 의학상을 수상했다.) 카할은 오늘날 우리가 ‘시냅스’라 부르는, 세포들 사이의 비어있는 틈새가 기억을 형성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비밀 장소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 마들렌을 맛볼 때, 과자 맛의 하류 쪽 뉴런들, 콩브레와 레오니 아줌마의 유전자를 암호화하는 뉴런들에도 불이 켜진다. 세포들이 나눌 수 없이 얽히고, 기억이 만들어진다. 신경과학자들은 아직도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이 아는 것은 기억을 만드는 과정이 새로운 단백질을 필요로 한다는 것뿐이다. 이것은 일리가 있다. 단백질은 생명의 벽돌이고, 모르타르이니까. 그리고 회상한다는 것은 약간의 세포 생성을 필요로 하니까.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우리 기억 자체가 유동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기억이란 단지 그것을 가장 최근에 회상했을 때만큼만 사실인 것이다. 무엇인가를 더 많이 기억할수록, 그 기억은 덜 정확해진다.

거북스러운 진실은, 우리가 회상하는 것이 프루스트가 끊임없이 문장과 내용을 바꾸어가며 글을 써내려가는 것과도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회상해야 할 기억이 있는 한 그 기억의 가장자리는 우리가 지금 아는 것에 맞추어 변경된다. 시냅스들은 지워지고 수상돌기들은 비틀리고 기억된 순간은 완전히 개정된다. 프루스트는 생전에 [잃어버린 시간]의 완결된 인쇄본을 보지 못했다. 그에게 그 작품은 다시 고칠 수 있는 것으로 남아 있었다. 마치 기억 그 자체처럼.

그리고 작가는 프리온prion으로 넘어간다. (참고: 살인단백질이야기를 읽어보면 프리온이 얼마나 악명 높은 단백질인지 알 수 있다.) 프리온은 생물학의 법칙 대부분을 위반한다. 그것들은 DNA를 바꾸지 않고도 단백질 구조를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그것들은 우리 안에 존재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와 별개이며, 그 자신의 법칙을 따른다. 이 프리온과 유사한 (혹은 같은) CPEB(세포질 폴리아테닌화 인자 결합 cyptoplasmic polyadenylation element binding) 단백질이 바로 기억을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프루스트가 말했듯이, 

“과거는 우리가 전혀 엿볼 수 없는 어떤 물질적 대상 속에 감추어져 있다.”

 


5.

다섯 번째. 폴 세잔.  

세잔의 예술은 보는 과정을 드러내준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빛의 총화라 믿었던 모네, 르누아르, 드가 등의 인상파 화가들은 찰나적인 광자光子들을 묘사하고자 했다. 그러나 세잔은 빛이란 보는 과정의 시작일 뿐이라고 믿었다. “눈으로는 충분치 않다. 생각할 필요도 있다.”고 세잔은 선언했다.

올리버 삭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 등장했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피 선생)를 통해 보이는 것과 인식(어떤 대상의 요소를 통합된 개념으로 동화시키는 작용)하는 것은 별개이며, 결국 세잔이 옳았노라고 작가는 귀띔한다. 

세잔이 이해했듯이, 보는 것은 상상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독특한 시각적 세계 안에 갇혀있다. 만일 우리가 그 세계로부터 자의식을 제거한다면 어떨까? 만일 우리가 안구의 몰개성한 정직성으로 세상을 본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형태 없는 공간에서 반짝거리는 외로운 빛의 점들만을 보게 될 것이다.

 
6.

여섯 번째로 등장하는 예술가는 발레곡 불새(1910), 페트루슈카(1911) 등으로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Igor Stravinsky 1882~1971이다.

파리 악단에서 찬반양론의 소동을 일으켰던 봄의 제전(1913)을 통해 사람들이 불협화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 소음에 불과했던 소리가 현대적 교향곡의 고전이 되는 과정을 흥미롭게 분석하며 청각과 청각피질에 대해 재치 있게 설명한다.

(이 장은 올리버 삭스의 뮤지코필리아를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7.

일곱. 거트루드 스타인 Gertrude Stein, 1874~1946.

거트루드 스타인은 전위 예술가이기 이전에 과학자였다. 그녀는 하버드 대학교의 윌리엄 제임스의 심리학 연구실에서 ‘자동기술 automatic writing’을 연구하며 자신의 무의식과 교통하고자 했다.

 

(A CARAFE, THAT IS A BLIND GLASS. A kind in glass and a cousin, a spectacle and nothing strange a single hurt color and an arrangement in a system to pointing. All this and not ordinary, not resembling.)

물병, 그것은 눈먼 글라스. 글라스의 일종이자 사촌이며, 구경거리이자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단일한 다친 빛깔이며 체계 내에서 지적하기 위한 배열이다. 이 모든 것이고 평범하지 않으며, 닮지 않은 가운데서도 질서가 없지 않다(스타인의 실험적 문장들은 사실상 정확한 번역이 불가능하나, 전체적인 느낌만이라도 알 수 있도록 대강 옮겼다-옮긴이)

 

 

 

▲ 피카소는 거트루드 스타인에게 원시 가면과도 같은 표정을 부여했다. 

두상의 원근은 평평하게 다져지고, 그림은 세잔이 자기 아내를 그린 것과도 비슷해졌다. 누군가가 스타인이 초상화와 전혀 비슷하지 않다고 지적하자, 피카소는 익살스럽게 대꾸했다. “비슷해 질 거야.”

피카소가 옳았다. 그녀의 문체는 점점 더 추상적이 되어갔다.

그녀는 언어를 그 표현적 내용에서가 아니라 숨은 구조에 따라 정의한다 -사실 그녀의 언어는 내용적인 면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단어의 나열들이었을 뿐이다-. 의미를 떼어내면, 구조만이 남는다. 

스스로를 천재라 여기며 무의미한 실험적 글들을 끝없이 썼던 스타인은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의 인터뷰에서 마침내 패배를 시인했다. “나는 단어들을 의미 없이 결합시킨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의미 없이는 결합시킬 수가 없어요.” 

아이러니컬하게도 완전히 무의미한 문장을 쓰려는 스타인의 실험이 실패한 것이야말로 그녀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8.

마지막 여덟 번째. 버지니아 울프 Virginia Woolf 1882~1941.

우울증을 앓으며 끊임없이 내면과 갈등을 겪어왔던 울프의 비장하고도 불행한 삶이 마지막 챕터에 등장한다. 

“사물은 워낙 복잡해서 ...... 두 가지 상반된 것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이것이 네 느낌이야, 하는 것이 하나이고, 이것이 내 느낌이야, 하는 것이 다른 하나이며, 그것들은 그녀의 마음 속에서 서로 다투었다.” ([등대로]의 주인공인 화가 릴리의 말) 

실제로 대뇌피질은 하나의 두개골 속에 들어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두 개의 덩어리(좌반구와 우반구)로 나뉘어져 있으며 이것들은 서로 일치하지 않도록 고안되었다. 양반구 사이를 잇는 뇌량 덕분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단일성을 믿고 있지만, 모든 ‘나’는 사실상 다중적이다. 

“자아란 환영이다.” 이것이 자아에 대한 그녀의 최종적인 견해이다. 
현대 신경과학은 이제 울프가 믿었던 자아를 확증하는 중이다. 

 

 

“네 최고의 지혜보다도 네 몸 안에 더 많은 이성이 깃든다 - 니체 The portable Nietzsche”  

 

 

 

작가 소개

『시드』 의 자유편집자. 조나 레러는 소년 같은 얼굴과 실제로도 스물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놀랄 만큼 다양한 경험을 자랑한다. 그는 콜럼비아 대학에서 신경과학을 전공하고 로즈 장학금을 받아 옥스퍼드 대학에서 20세기 문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노벨상 수상자인 에릭 캔들의 실험실에서 연구했으며 뉴욕의 일류 레스토랑인 ‘르 시르크 2000’과 ‘르 베르나르댕’에서 요리사로도 일했다. 『보스턴 글로브』『네이처』『노바』 등에 글을 쓰며 인기 과학 블로그 THE FRONTAL CORTEX(HTTP://SCIENCEBLOGS.COM/CORTEX/)을 운영하고 있다.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는 그의 첫 책으로 출간 이후 언론과 학계로부터 많은 찬사와 관심을 받고 있으며, 인문학과 과학을 잇는 중요한 책으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