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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등인의 별/읽고 ▤

아인슈타인 피카소 - 아서 I.밀러

by 마루몽. 2014. 4. 4.

 

 

세기의 두 천재 이야기.

한 사람은 예술가로서 또 한 사람은 과학자로서 20세기 최고의 천재로 주목받았던 피카소와 아인슈타인. 같은 26세의 나이에 피카소는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창조했다.

1장(두 세계는 결국 하나)만 놓고 보면 두 천재 사이의 공통점을 조목조목 분석하려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실제로는 같은 시대의 두 사람이 획기적인 일을 해 낸 20대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유럽이라는 한 지붕 아래의 시대상이 반영되어 둘 사이의 유사점이 부각된 것일 뿐 무리하게 두 사람을 엮으려는 시도를 한 건 아니다. 

이 이야기의 공통분모 역할을 하는 것은 타고 난 시대와 환경 외에도 푸앵카레라는 세기말의 거장이 있다. 1904년 아인슈타인은 [과학과 가설 La science et l'hypothese]의 독일어판 번역본을 읽었으며 피카소는 프랑세의 비유클리드 기하학과 4차원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는데 프랑쎄의 지식은 당시 널리 읽히던 푸앵카레의 [과학과 가설]에서 얻은 것이었다.

입체주의의 뿌리는 폴 세잔(Paul Cezanne)과 원시예술이라는 것이 미술사가들의 중론이지만, 과학의 뿌리가 결코 과학 자체에만 한정되어있지 않듯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운동의 뿌리 역시 미술에만 한정되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특히 그 시대의 혁신적인 과학의 발전은 사진술이나 영화에도 영향을 미쳤고 시각예술 영역인 회화 역시 새로운 것을 탐구하려는 시대상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20세기 이전부터 수학자들은 (미술가보다) 훨씬 더 추상적인 수준에서 3차원보다 높은 차원에서 표현될 수 있는 낯설고 새로운 기하학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사람들은 4차원, 그리고 그것이 암시하는 공간 또는 시간에서 일어나는 운동에 특히 매혹되었다. 이런 분위기는 앙리베르그송이나 프랑스의 위대하고 박식한 인물 앙리푸앵카레와 같은 사람들이 쓴 철학 저술에서뿐만 아니라 신문, 잡지, 카페에서도 논의되었다. 새로운 발상과 변화에 대한 욕구가 어디에서나 흘러넘쳤던 것이다.

피카소와 가까운 친구들의 모임인 피카소패거리(La bande a Picasso)는 시인, 신비주의자를 비롯하여 비유클리드 기하학, 4차원, 시간여행 등에 대한 우화들을 발표한 알프레드 자리(Alfred jarry)와 같은 몽상적인 아방가르드 문인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들 사이에 오갔던 이야기 또한 당시의 지적인 분위기를 반영했을 것이라는 사실은 그 구성멤버를 보면 알 수 있다.

스위스의 베른에서도 피카소패거리와 비슷한 성격의 연구 그룹이 형성되어 비슷한 주제들을 논의했는데 이들은 스스로 [올림피아 아카데미]라 불렀다. 

각 그룹은 모든 지식을 자신의 영토로 삼았는데 중심에는 한 태양이 있었다. 파리에서는 피카소였고 베른에서는 아인슈타인이었다.

 

고전 세계의 종말. 

피카소 그림의 시간은 인상주의 미술의 시간 개념을 초월한다. 공간적 동시성 개념은 미술에서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이었다. 그것은 완전히 다른 관점들의 동시적 재현으로, 그 총합이 묘사되는 대상을 구성한다. 당시 유행하던 신비주의의 용어를 빌자면, 마치 피카소는 “성기체의 수준”에 올라서는 길을 찾아낸 것 같았다. 

아비뇽의 아가씨들에서 시간을 다루는 방식은 매우 복잡하다. 우리는 이 그림을 기하학적 표현이 한층 증가되어 가는 5개의 일련의 영화 프레임들로 볼 수도 있다. 한편 쭈그리고 앉은 아가씨는 스냅사진을 연속해서 겹쳐놓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정면의 모습과 옆모습이 동시에 표현되어 있는 쭈그리고 앉은 아가씨는 4차원으로부터의 투사로 해석되었다. 피카소는 이제 보이는 것 이면의 것을 그림으로 나타내려고 애를 썼던 것이다. 거트루트 스타인은 말했다. “피카소가 볼 수 있었던 것들은 그 나름대로의 현실성을 가진 것이었는데 그것은 보이는 것들의 현실성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들의 현실성이었다.”

아인슈타인 역시 고집스럽게 상대적인 운동과 에테르에 대한 문제에 관해 생각해왔으며 그가 생각해낸 시간이나 공간은 일반적으로 지각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창조적 사고는 본질적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아인슈타인은 생각했다. “자연발생적으로” 느끼는 경이는 고도로 시각적인 사고의 뿌리였다. 그에게 창조적 사고는 시각적 이미지로 나타났으며 말은 “오직 두 번째 단계에서 힘겹게 찾아낸 것일 뿐”이었다. 음악가로서 또 물리학자로서 아인슈타인은 반실증주의자였다. 음악에서는 음표와 악기 너머로 선율이 둥둥 떠다니는 숭고한 영역이 있었고 물리학에서는 관찰과 이론 위에 천체들의 음악이 놓여있었으며 자연의 법칙들은 바로 그 곳에서 음악처럼 흐르고 있었다. 

 

 

루비콘 강을 건너는 일은 다음 세대에게. 

추상을 향한 경향은 곧 그것을 처음 시작한 중요한 두 인물을 뒤에 남기고 계속 전진해갔다. 아인슈타인도 피카소도 루비콘 강을 건너 극단적 추상으로 넘어가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작업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영감을 주었다.

원자물리학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만이 아니라 그가 이론을 구축할 때 사용하던 선구적인 방법에 의존하면서 발전하여 시각 이미지에서는 추상에 이르렀고, 그에 따라 고전적인 인과론과는 결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작 아인슈타인 자신은 그것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추상미술의 선구자임에도 불구하고 피카소 자신은 결코 몬드리안이나 칸딘스키, 말레비치 등과 같이 완전한 추상의 영역에 발을 디디지 않았던 것처럼. 

 

그러나 루비콘 강은 하나가 아닐 것이라는 게 책을 덮으면서 느끼는 마지막 느낌이다. 하나를 건너면 또 하나가 있고 그걸 건너면 또 다른 루비콘 강이 사람들을 시험하기위해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과학적 사고는 과학 이전에 발달한 것이라고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아인슈타인이 사랑하고 존경했던 로렌츠 역시 ‘지방 시간(국소시간)’을 생각해냈으나 그것은 에테르 표류실험의 실패를 설명하기 위한 가설이었을 뿐, 물리적 시간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감각지각에 위배되니까. 그러나 아인슈타인이야말로 감각지각이 발목을 잡고 있는 현실을 넘어 결국 루비콘 강을 건넌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창조하는 것이다. 

다른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다. 

창조가 전부이다. 

피카소

 

 

목차 

 

1장 _ 두 세계는 결국 하나

2장 _ 잘생긴 구두닦이

3장 _ 격변을 몰고 온 남성적인 아름다움

4장 _ 피카소는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어떻게 발견하였는가

5장 _ 브라크와 피카소의 공간 탐험

        막간 

6장 _ 기적의 해 :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을 어떻게 발견하였는가

7장 _ 나는 정말이지 아인슈타인이 이런 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8장 _ 예술과 과학에서의 창조성 

 

 

 

 

 

Einstein, Picasso ; Space, Time, and the Beauty That causes Havoc / 2001

by Arthur I.Miller

 

 

 

아비뇽의 아가씨들 Les Demoiselles d'Avignon

 

1907년 파블로 피카소(Pablo Ruizy Picasso:1881∼1973)가 그린 입체파의 선구적 그림.

파블로 피카소는 Bateau-Lavoir(피카소가 살던 몽마르트르 거리의 다른 이름)에 머물면서 1905년 이 작품을 구상하였다. 그는 100여 장이 넘는 소묘를 그리고 무수한 덧칠 끝에 사방 6m에 이르는 대작을 완성하였다. 그림 속의 여인들은 바르셀로나 아비뇽 거리의 매춘부인데 작품에 이름이 붙기도 전에 그의 동료나 선후배들은 이 혁명적인 작품에 혹평을 퍼부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