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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등인의 별/읽고 ▤

올리버 색스-의식의 강

by 마루몽. 2022. 2. 25.

올리버 색스 [의식의 강]

그의 많은 책들이 그러하듯 다양한 지식과 통찰력이 사계절처럼 녹아들어 있다.  

 

 


 

리뷰라기보다는...

읽었던 부분 중 인용하고 싶은 페이지를 찾으려고 최근에 다시 펼쳐보았다. 

 

어릴 적에 아스팔트 위에서 동네 아이들과 놀다가 달려오는 트럭에 부딪치는 사고가 난 적이 있다. 

당시 트럭의 바퀴가 집채만큼 커 보이면서 매우 천천히 움직여 나는 여유롭게 트럭 아래로 몸을 납작하게 엎드렸다. 

트럭이 멈춰 섰고 이름은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 늘 술에 취해있던 아랫집 아저씨가 나를 안고 울상을 지었던 기억이 난다. 엄청나게 걱정스런 얼굴로 괜찮냐고 몇 번이나 묻던 빨간 볼의 아저씨. 그날 이후 그 아저씨는 더 이상 무서운 아저씨가 아니었지.

 

어쨌든 그때의 기억은 내게 기적도, 위험했던 사건도 아닌, 시간이 탄력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일화로 남게 되었다. 

 

그런데 그 경험이 바로 임상체험 중의 하나였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것. 

 

 

....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의 <정신의 삶 The Life of the Mind>을 읽다가 다음과 같은 구절을 발견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곳, 시계와 달력의 저편에 영원히 존재하는 완벽한 고요, 시간에 쫓겨 허덕이던 인간적 존재가 조용히 머무는 곳. 시간의 한 복판에 버티고 있는 이 작은 비시간적 공간 non-time space이여!]
나는 그녀가 뭘 말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에 갑자기 직면한 사람이 사간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대한 일화적 설명들은 많지만, 그와 관련된 체계적 연구를 처음 수행한 사람은 1892년 스위스의 지질학자 알베르트 하임이었다.
그는 알프스 산맥에서 추락하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사람 서른 명을 대상으로 정신 상태를 분석하여 이렇게 적었다.
[그들의 정신활동 속도는 무려 100배로 증가했다. 사간이 엄청나게 확장되어, 상당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과거사 전체를 순식간에 다듬었다.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하는 동안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불안감이 완전히 사라지고 수용acceptance의 태도가 자리 잡았다.]


그 후 거의 한 세기가 지난 1970년대에, 아이오와 대학교의 러셀 노이스와 로이 클레티는 하임의 논문을 발견하여 번역한 다음, 그런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200여 명 수소문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임의 연구에 참가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고思考 속도가 증가했으며 자신들이 ‘삶의 마지막’이라고 여긴 순간 동안 시간의 진행이 느려지는 현상을 경험했노라고 진술했다.

예컨대 자동차 충돌로 인해 10미터 밖으로 튕겨나가 죽을 뻔했던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사건이 매우 오랫동안 진행되는 것 같았어요. 모든 장면은 슬로모션이었고, 나는 무대 위에 선 비보이가 되어 수도 없이 텀블링을 하는 것 같았죠. 나는 마치 관중석에 앉아 모든 사건들을 관람하는 느낌이었지만 전혀 두렵지 않았어요.]

다른 한 명의 운전자는 언덕을 고속으로 주행하던 중 달려오던 기차와 불과 30미터 거리를 두고 맞닥뜨렸음을 깨닫는 순간, 죽음이 임박했음을 확신했다.
[기차가 지나가는 동안 기관사의 얼굴을 봤어요. 마치 영화에 나오는 슬로모션처럼, 흐릿한 장면들이 조금씩 흔들리면서 진행되었어요. 기관사의 얼굴도 그런 형태였죠.]

이처럼 죽음이 임박한 상태의 체험을 임사(臨死)체험이라고 한다. 임사체험의 전형적 특징은 무력감과 수동성, 심지어 이인증(dissociation/ 자기가 낯설게 느껴지거나 자기로부터 분리. 소외된. 느낌을 경험하는 것으로, 자기 자신을 지각하는 데 이상이 생긴 상태를 가리킨다)이지만, 어떤 임사체험의 경우에는 강렬한 즉각성과 현실성, 그리고 사고. 지각. 반응의 극적인 가속화를 수반함으로써 당사자로 하여금 위험을 성공적으로 회피할 수 있게 해 준다..


올리버 색스의 <의식의 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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